> 문화와역사 > 지명

  영동읍

AD 995년 : 고려 성종 14년에 계산 또는 계주로 부르고 자사(刺史)를 두었다.
- 1018년 : 현종 9년, 경상도 상주에 이속되었다.
- 1172년 : 명종 2년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동(洞) 6년에 현령(縣令)으로 승격시켰다가 다시 감무를 두는 등 수차례 변경되었다.
- 1413년 : 조선 태종 13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속시키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 1895. 5. 26 : 고종 32년 칙령 제98호에 의한 영동군 설치 시 군내면(郡內面)이라 한다.
- 1914. 3. 1 : 부령(府令) 제111호(1913.12.29일 공표)에 의한 부 . 군 . 면(府 . 郡 . 面) 폐합시 군동면(郡東面), 서이면(西二面), 남일면(南一面)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영동면이라 개칭하였다.
- 1940. 11. 1 : 부령(府令) 제221호에 따라 영동읍으로 승격,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설계리(雪溪里)

본래 영동현 북이면 목적리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내면 구수동, 목적동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구수동, 목적동, 어미곡을 병합하여 구수동(구수골)과 목적동(눈어치-일제시대에 잘못하여 눈[目]자를 내리는 눈[雪]자로 개편)의 뜻을 따서 설계리라 하여 영동읍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 눈어치(누너치), 구수동(구수골), 어미실(왜미실, 예미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미실 자갑에는 향엄사가 자리잡고 있다.

(2) 산이리(酸梨里)
본래 영동현 서이면 오정리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서이면에 속했고 신 배(梨)가 많이 생산되어 신뱃골.산리동이라 했던 것이 변하여 심복골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이면 점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이리라고 해서 영동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명은 산이리라 하고 자연마을은 심복골(평리말).백두골(배두골).양지말 등이 있다.

(3) 부용리(芙蓉里)
본래 영동현 남남일면의 역리로 조선조 때 역말이었으므로 붙은 지명이다. 부용산 이름을 따 부용리라 하여 영동읍에 편입되었다. 부용리 서쪽에서 양가동으로 넘어가는 아리랑고개는 예부터 유명하고 고갯길을 닦을 때 일꾼들이 아리랑 노래를 많이 불렀다 한다. 양가동에 있는 고분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영동농공고등학교와 을곡 사이에 있는 석실고분은 12층 내지 15층으로 질서 정연하게 쌓았으며 양가동 동북방, 서북방 2개소에 25기의 고분군이 있다. 행정리동으로 부용1리(역말, 성지골, 봉덕골)와 부용2리(을골, 작곡동), 양가동(양가동, 개골)이 있다.

(4) 산익리(山益里)
본래 영동현의 남남일면 마구천리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내면 산익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산익리라 해서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은 산익이.산익.산익골 등으로 부른다.

(5) 계산리(稽山里)
본래 영동현의 동동면과 서이면, 남일면, 북이면의 일부 지역으로 1909년 군내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토금리. 구교동.남정리.동정리.목적동 일부를 병합하여 영동군의 옛 이름인 계산의 이름을 따서 계산리라 하여 영동읍에 편입하고, 행정리로 계산1리(자연마을:계산동, 새마을), 계산2리(계산리), 중앙1리(중앙동), 영산1리(영산동, 당말리), 영산2리(영산동), 구교동(생기골, 귀골), 금리(토금리)등 8개 리가 있다. 영동읍의 중심지역을 이룬다.

(6) 동정리(桐井里)
본래 영동현 동동면 동정리(東亭里)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내면 동정(東丁)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부석동.신기동(新基洞).비립동(碑立洞)을 병합하여 이곳에 오동나무와 우물이 있으므로 동정리라고 해서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명은 동정리(東井里)로 자연마을은 새터.가마실.비석거리가 있다.

(7) 회동리(會洞里, 會寧)
본래 영동현 동동면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동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재궁동(才宮洞).장평동(長坪洞).장내동(檣內洞)을 병합하여 회령 사람이 와서 살았으므로 회동리라 하여 영동면(읍)에 편입되엇고, 행정리명은 회동리로 자연마을로 회동.담안.마평(마우뜰).재궁골이 있다.

(8) 화신리(花新里)
본래 영동현 고곡리(古谷里)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동면 화평리와 신촌동.사동(寺洞) 일부를 병합하여 화평과 신촌의 이름을 따서 화평리라 하여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로 화신1리(새만, 화평)와 화신2리(사동:절골)가 있다.

(9) 당곡리(堂谷里, 당골)
본래 영동현 고곡리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동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기동과 삼봉동을 병합하였다. 삼봉산(三奉山) 밑의 마을로 관우사당(關羽祠堂:고자리 산중에 있었는데 당곡리로 이전)을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셔 매년 정월 14일에 제사를 올린다. 행정리명은 당곡리이며 자연마을로 당곡.신기(새터).삼봉이.양지말(陽村)이 있다.

(10) 매천리(梅川里)
산막천(山幕川)과 가리천(加里川), 산이천(山益川)의 세 내(川)가 합하므로 매끄네 또는 매천(梅川)이라 이름을 따라 매천리라 하여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로 매천리(매끄네, 밴드골 : 반곡동).조심리(조심동:새심이)가 있다.

(11) 오탄리(梧灘里)
본래 영동현 서이면 오정리(梧亭里)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서이면에 속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오정리(梧亭里)와 비탄동(飛灘洞)을 병합하여 오탄리라 해서 영동면(읍)에 편입되었으며, 행정리로 오정리(외오정 . 안오정)와 비탄리(비탄.점촌:점말)로 되어 있다.

(12) 심원리(深源里)
본래 영동현 동동면 심원리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동면 예전(禮田)과 탑선(塔仙)리로 나뉘어져 있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예전과 탑선동을 병합하여 심원리라 해서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로 예전리(禮田, 대금동) 탑선리(탑선)가 있다.

(13) 봉현리(棒峴里, 봉우재)
본래 영동현 동동면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내면 봉현리였으며, 봉화대(烽火臺)가 있었으므로 봉우재, 봉화재 또는 봉화현이라 하였다. 자연마을 봉우재는 양지말과 음지말이 있다.

(14) 가리(加里, 가이)
본래 영동현 동동면 가이리(加耳里)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동면의 사기전(沙器店), 각후(覺后)로 나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가리와 하가리를 병합하여 가리라 해서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동으로 상기리(각후:覺後;각호).중가리(사기점:옛날 사기를 굽던 마을, 강변말, 무근점).하가리(하가, 미륵댕이:관서터)가 있다. 상가리 뒷산에는 천지신당(天地神堂)과 백마산 정상을 중심으로 둘러 약 1.5km의 백마산성(白馬山城)이 있다.

(15) 임계리(林溪里)
본래 영동현 동동면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동면에 속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내주곡동(內主谷洞, 임실:林實)과 미당동.지통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임실과 임실내의 뜻을 따라 임계리라 하여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명은 임계리이고 자연마을로 임실, 안점(내점, 옛날 옹기점이 있었다.)이 있다.

(16) 주곡리(主谷里, 임실)
본래 영동현 동동면 주곡리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군동면 조현.미당.사동(寺洞).주곡(主谷)으로 나뉘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조현동과 미당동.사동(寺洞).회동(會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주곡리를 설정하고 영동면(읍)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 주곡과 새재(鳥터)가 있으며, 주곡리와 가리(加里) 중간에 경부선 미륵역이 있다.
  29146 충북 영동군 영동읍 영산로 29 TEL : 043-742-2215 FAX : 043-742-2224
COPYRIGHT2006.YEONGDONG CULTURAL CENTER ALL RIGHTS RESERVED